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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트벵글러
저자: 헤르베르트 하프너, 이기숙 | 출판사: 마티 | 간행일: 2007년 9월
분야: 예술/대중문화 | 쪽수: 757쪽 | 정가: 36,000원
36,000원 → 17,820원 ( 50%), 알라딘
2010년 09월 24일 21시 32분
추천 : 1     조회 : 303
글쓴이: 베토벤
왜 지금 푸르트벵글러인가?
클래식 음악에 사형선고가 내려진 지 이미 오래다. 패키지 형태의 음반 시장의 축소와 함께 최초의 대중적인 디지털 매체인 음악CD도 곧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쇠락의 기운이 이중으로 감도는 클래식 음반시장에서 시류를 거슬러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푸르트벵글러’다. 그가 남긴 음원은 여러 음반사를 통해 끊임없이 재발매되고 복각된다(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6월 실황녹음은 10여 개 음반사에서 재발매를 했다). 메이저 음반사조차 비용이 많이 드는 교향곡 녹음이나 오페라 녹음을 꺼리는 상황에서 푸르트벵글러는 음반시장에 남은 유일한 황금광산처럼 보인다. 동일한 음원을 여러 음반사에서 앞다투어 발매하는 현상은 인접 저작권의 소멸과 상태가 좋은 초반 레코드만 확보하면 손쉽게 복각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바 크지만, 사그라질 줄 모르는 푸르트벵글러 신드롬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와 함께 한 시대를 사로잡았던 명지휘자들의 명성이 퇴색해 가는 반면, 푸르트벵글러의 음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지휘자
푸르트벵글러는 1886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1954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안장되었다. 푸르트벵글러의 일생을 보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의 유럽은 정치적으로는 양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등의 격변으로 점철되었지만, 녹음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이 최절정기를 맞이하던 시대였다. 문화의 모든 역량과 자본 그리고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로 몰리던 시기였으며, 미술, 건축 등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거장의 시대’였다. 푸르트벵글러는 바로 이때, 독일어권에서 가장 유서 깊고 명망 높은 오케스트라 세 곳(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또 전유럽과 미대륙의 극장과 대형 음반사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 음악계 최고의 우량주였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그의 화려한 이력 때문이 아니다. 최고였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논란이 많은 지휘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 혹은 예술의 의미,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그는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지휘자’였다.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표준 전기
국내 최대의 클래식음악 동호회인 ‘고클래식’에서도 푸르트벵글러는 언제든 논쟁을 촉발할 수 있는 화약고다. 신뢰할 만한 이렇다할 문헌도 없는 상황에서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어떤 이에게 그의 베토벤은 음악도 아니며, 어떤 이에게는 예술로 고양된 인간정신의 정점이다. 역사적 이해를 결여한 영웅숭배와 혐오는 신화를 낳는다. 또 논란이 많은 인물에 대한 전기는 신화(부정하는 신화든, 긍정하는 신화든)를 공고히 하거나 신화를 해체한다. 헤르베르트 하프너의 『푸르트벵글러』는 신화를 해체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저자 하프너는 광범위하고 철저한 문헌 조사와 당대 증인들과의 대담을 통해 그동안 잘못 전해온 수많은 오류들을 바로잡았다. 첼리비다케, 카라얀 등 동료 지휘자와의 관계,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못하게 한 최초의 지휘자가 푸르트벵글러였다는 이야기 등 출처 없이 떠돌던 에피소드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는다. 『푸르트벵글러』는 파편적으로 이해되던 푸르트벵글러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출간과 동시에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표준적인 전기로 평가받고 있다. 또 이번 한글 번역판에는 푸르트벵글러의 음악과 생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푸르트벵글러가 쓴 에세이 6편을 수록했다.

음악은 악보 너머에
“베토벤이 우리에게 제시한 길은 상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옳다. 음악 특히 순수 기악곡은 누가 뭐래도 일정한 법칙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 그 법칙은 음악의 깊숙한 본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75~76쪽)
자의적인 템포 설정과 악보에 얽매이지 않는 푸르트벵글러의 해석은 흔히 낭만주의적, 주정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원텍스트(원전 악보)에 충실한 ‘정격’ 연주를 미덕으로 여기는 최근의 흐름에서 보자면, 푸르트벵글러는 원곡을 훼손한 불성실한 해석가일 따름이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가 보기에 작품에 충실한 것은 악보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127쪽) 그의 해석은 단순한 주정주의나 낭만주의가 아니었고, “사물의 표현을 통해 훈련된 주관성”이었다. 악보를 또박또박 옮겨놓는다는 뜻에서 말하는 ‘작품에 충실한 지휘자’가 아니었으며, 내면의 맥박과 작품의 내용을 포착하고 전개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작품에 충실한 음악가였다.(133쪽)
푸르트벵글러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지휘자가 작품과 역사를 대하는 태도와 조성음악과 음악의 법칙성에 관한 비평적 관점에 국한된 것이라면, 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의 관점과 입장은 20세기 예술의 역사에서 손쉽게 상대화되기 때문이다. 세잔을 존경하고 그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예술사의 흐름을 알기에 그렇게 할 수 없는 프랭크 스텔라처럼, 푸르트벵글러를 흠모하지만 클라우디오 아바도나 사이먼 래틀이 21세기에 그와 같은 식으로는 지휘를 할 수 없는 법이다.
푸르트벵글러의 최면과 같은 황홀경과 질주하는 템포가 이루어지던 장소를 제외하고서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히틀러와 괴벨스, 괴링을 앞에 두고 광포할 정도로 피날레를 향해 내달리던 그의 베토벤 9번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예술은 정치를 초월할 수 있는가
“예술은 국가에서 출발하지만 국가를 초월해 있다. 예술의 정치적 기능은, 특히 우리 시대에는 정치를 초월한다는 데에 있다.”(474쪽)
푸르트벵글러는 예술이 정치를 초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진실성은 접어두더라도, 이 믿음을 버팀목 삼아 푸르트벵글러는 나치 독일을 떠나지 않았고, 폭격 속에서 베를린 필의 지휘대에 올랐다. 음악 내적·외적으로 푸르트벵글러의 대척점에 서 있는 토스카니니와 나눈 대화는 그의 입장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토스카니니가 “지금 같은 세상에 예술가가 압제적인 국가와 자유 국가에서 동시에 지휘할 수는 없어요”라고 비난하자, 푸르트벵글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그너와 베토벤이 연주되는 곳이면 인간은 어디서나 자유롭습니다. 만일 자유롭지 않다면 그 작품들을 들으며 자유로워집니다. 음악은 비밀경찰이 손대지 못하는 곳으로 인간을 데리고 가니까요. … 나치 정부가 권력을 쥐고 있으면 나는 나치 지휘자이고, 공산주의자들 밑에서는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들 밑에서는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은 다른 세계에 속합니다. … 예술은 모든 우연한 정치적 사건 너머에 있지 않을까요?”(354~355쪽)
푸르트벵글러의 말대로 자신의 베토벤과 바그너가 히틀러의 나치즘이라는 정치적 현실을 초월할 수 있었을까? 푸르트벵글러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레니 리펜슈탈과 같은 정치적 백치가 아니었다. 그는 저자의 말대로 음악으로 정치를 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다른 문화에 앞서 있다고 믿은 ‘독일’음악에서 찾았고, 독일을 부정할 의사가 추호도 없었다. 그는 나치 정권 아래에서 프로이센 추밀원 고문과 괴벨스의 문화원로원 의원, 제국 음악국 부의장을 지냈으며, 나치 전당대회에서 ‘민족’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지휘했다.

푸르트벵글러는 나치였는가?
푸르트벵글러는 나치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형식적인 답은 무척 간단하다. 그가 공식적으로 당원이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으며, 괴벨스가 인정하는 대로 민족사회주의자였던 적도 한 번도 없다.(473쪽) 하지만 그는 나치 독일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국가 문화자산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의 대외선전 정책에 봉사했다. 그렇다면 반유대주의자였을까? 그는 반유대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베를린 필하모니를 나치 독일 속 유대인들의 오아시스로 만들어 유대인 연주자를 보호하는 데 애썼다. 또 반민족적 작곡가로 낙인찍힌 힌데미트를 옹호하는 글을 신문에 실어 괴벨스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푸르트벵글러가 보호하려한 것은 인종주의에 맞선 인간적 가치가 아니었다. 그가 나치와 충돌해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한 것은 예술의 질, 정치에 대한 문화의 우위였다. 실제로 그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자신을 진료하기 위해 수용소에서 특별 휴가를 받아 나온 주치의에게 과일 하나 건넬 생각을 하지 못했다.(430쪽) 또 영국으로 망명해 음악계를 떠나 있던 빈 필 출신의 첼리스트 북스바움을 빈 필이 초청하자 북스바움의 기량이 못미친다고 생각한 푸르트벵글러는 그에게 물러나달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단순히 인간적인 행동보다는 최고의 기량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북스바움은 이튿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556쪽)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겪은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만한 마음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 “나치 독일과 관련되었던 유대인들이 독일인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독일에 남았던 나 같은 사람들이 지금 받는 것처럼 자기 민족으로부터 압력과 테러를 당하고 결국엔, 옳든 그르든 공개적인 모욕까지 당하는 게 더 참담한 일 아닐까요?”(548쪽)

베토벤과 히틀러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현실 앞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괴테와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문화의 땅 독일에서 히틀러와 홀로코스트가 가능했을까라고 묻곤 한다. 푸르트벵글러도 “독일은 나치의 독일이 아니라 나치에 지배당한 독일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은 단호하다. “독일에서는 괴테와 괴벨스가 가능했고, 베토벤과 히틀러,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과 베르겐 벨젠 수용소도 동시에 가능했다고 말해야 진실이다. 독일은 얼마든지 ‘나치 독일’이 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푸르트벵글러는 이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469쪽) 예술이 정치를 초월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이다. 오직 이 질문은 역사적 문맥 속에서만 묻고 답할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은 히틀러의 나치즘을 초월할 수 있었는가?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다만 독자들의 판단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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