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 가장 많이 팔린 도서를 확인해 보세요.
북임팩트 모바일웹 | 앱 다운로드
무료회원가입  |  ID/PW찾기
만해문학상 역대수상작들
만해 | 2010-04-10 22:26:24 | 조회: 1892 | 추천: 0
만해문학상 (Manhae Prize for Literature)
 
 
   만해문학상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념하고 그 문학정신을 계승하여 민족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1973년 창비가 제정하여, 1988년 봄 계간 『창작과비평』의 복간과 함께 부활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이 상은 1974년 제1회 수상작인 신경림 시집 『농무』를 비롯하여 「황구의 비명」(천승세) 『만인보』(고은) 『무기의 그늘』(황석영) 『바람 타는 섬』(현기영) 『바람 부는 날』(민영) 『침엽수 지대』(김명수) 『유자소전』(이문구) 『녹두장군』(송기숙) 등의 수상작을 냄으로써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자리잡아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수상작은 매년 최근 3년간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시집, 소설집, 장편소설, 희곡집, 평론집 등)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상금은 1,000만원입니다.

 
역대 수상자 및 수상작
 
1974년 제 1회 신경림 시집『농무』
1975년 제 2회 천승세 단편 「황구의 비명」 「폭염」
1988년 제 3회 고은 시집 『만인보』 1, 2, 3
1989년 제 4회 황석영 장편 『무기의 그늘』
1990년 제 5회 현기영 장편 『바람 타는 섬』
1991년 제 6회 민영 시집 『바람 부는 날』
1992년 제 7회 김명수(金明秀) 시집 『 침엽수 지대』
1993년 제 8회 이문구 소설집 『유자소전』 
1994년 제 9회 송기숙 장편 『녹두장군』 전12권
1995년 제10회 조태일 시집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1996년 제11회 신경숙 장편 『외딴 방』 
1997년 제12회 백무산 시집 『인간의 시간』 
1998년 제13회 수상작 없음 
1999년 제14회 박완서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2000년 제15회 임형택『실사구시의 한국학』
2001년 제16회 정희성『詩를 찾아서』
2002년 제17회 김지하『花開』
2003년 제18회 박범신 장편『더러운 책상』 유홍준 『완당평전』
2004년 제19회 홍석중 장편『황진이』
2005년 제20회 김원일 연작 소설 『푸른 혼』
2006년 제21회 김규동 시집 『느릅나무에게』
2007년 제22회 김영하 장편소설 『빛의 제국』
2008년 제23회 윤영수 소설집 『소설 쓰는 밤』

 
만해 한용운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 출생.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이며 득도(得度) 때의 계명(戒名)은 봉완(奉玩),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 
1896년~7년 의병에 참가하였다가 실패하여 몸을 피해 고향을 떠남.
1899년 블라디보스또끄로 건너갔으나 박해를 받고 곧 돌아와 정처없이 전전.
1905년 1월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 득도(得到), 전영제사(全永濟師)에게 수계(受戒).
1907년 4월 강원도 건봉사(乾鳳寺)에서 수선안거(首先安倨)--최초의 선(禪)수업---를 성취.
1909~10년 7월 강원도 표훈사(表訓寺) 불교 강사(講師)에 취임. 승려 취처(娶妻) 문제에 관한 건의서를 두 차례 당국에 제출하여 불교계에 물의를 일으킨『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 범어산에서 조선임제종종무원(朝鮮臨濟宗宗務院)을 설치하여 3월 관장(管長)에 취임. 한일합방 이듬해 8월 만주로 건너가 독립지사들과 만나 운동의 방향을 논의. 
1914년 4월 『불교대전(佛敎大典)』을 범어사에서 발행. 8월 조선불교회 회장 취임. 
1918년 9월 월간지 『유심(惟心)』을 창간하여 이때부터 더욱 문학 창작에 힘을 기울여 「조선청년과 수양」「고통과 쾌락」「고학생」「천연(遷延)의 해(害)」「훼예(毁譽)」「무용(無用)의 영심(榮心)」등 많은 글을 『유심(惟心)』상 발표. 
1919년 3·1운동 주동자로서 손병희를 포섭하고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3월 1일 태화관에서 33인을 대표하여 연설하고 거사 후 피검. 가을, 감형되어 출옥. 
1924년 조선불교청년회 총재에 취임 
1926년 5월15일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발행. 5월 20일 시집『님의 침묵』을 간행.
1928~29년 1월 수필 「천하명기 황진이」를 『별건곤』지에 발표. 다음해 11월 광주학생의거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고 민중회의를 개최. 
1935~36년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후회(後悔)」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다가 신문 폐간으로 중단. 
1939년 회갑을 맞음. 11월 『삼국지』를 번역하여 조선일보에 연재.
1940년 5월 수필 「명사십리」가 『반도산하』에 수록. 창씨개명을 맹렬히 반대. 
1944년 6월 29일 중풍으로 심우장에서 입적(入寂). 유해는 미아리 화장터에서 다비를 거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됨.
© 2022 북임팩트('06)